정조 군주론의 한송절충론적 양상

이 논문은 정조의 정치사상에 수용되어 있는 한송절충적 경향을 살펴보고, 정조의 군주론이 왕권중심적인 국가 대일통을 도모했던 한대의 통치철학과 유사함을 추론해 보려는 것이다. 18세기는 정치, 사회, 문화학술 전방위에서 전환의 시대였다. 국가는 시대의 변화에 대응해서 개혁을 마련해야 했다. 정조는 국가질서 재건의 통일적 이념으로서 여전히 성리학을 중요하게 여겼지만, 성리학(宋學)의 관념성과 경직성에 대해서는 비판적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실증적인 고증학 즉 경(經)과 사(史)를 중시하는 한학(漢學)이 이를 보완할 수 있다고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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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inYulgok sasang yŏn'gu Vol. 45; pp. 189 - 219
Main Authors 이진경, Lee Jin Kyung
Format Journal Article
LanguageKorean
Published (사)율곡연구원 30.09.2021
(사)율곡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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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1738-8236
2713-7236
DOI10.35436/yulgok.2021.45..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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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이 논문은 정조의 정치사상에 수용되어 있는 한송절충적 경향을 살펴보고, 정조의 군주론이 왕권중심적인 국가 대일통을 도모했던 한대의 통치철학과 유사함을 추론해 보려는 것이다. 18세기는 정치, 사회, 문화학술 전방위에서 전환의 시대였다. 국가는 시대의 변화에 대응해서 개혁을 마련해야 했다. 정조는 국가질서 재건의 통일적 이념으로서 여전히 성리학을 중요하게 여겼지만, 성리학(宋學)의 관념성과 경직성에 대해서는 비판적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실증적인 고증학 즉 경(經)과 사(史)를 중시하는 한학(漢學)이 이를 보완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는 학문적으로 한송절충의 입장을 표명하였을 뿐만 아니라, 실제 정치에서도 성리학적 왕도정치보다, 초월적 왕권이나 관료제와 형법제도를 강화하는 것과 같은 한대(漢代)의 통치방식인 군주 중심의 법치주의를 확립하려고 하였다. 이는 무력에 의한 패도정치는 아니지만, 정조 자신의 지적 정치적 장악력에 기반한 일종의 전제성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영조의 탕평론을 계승발전시킨 황극탕평론과 만년의 통치철학을 밝힌 「만천명월주인옹자서(萬川明月主人翁自序)」는 정조가 더 이상 군신공치를 주장하는 성리학적 왕도가 아니라, 군주의 절대 표준 및 무오류(無誤謬)와 초월적 권력을 강화하는 절대주의적 군주를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조는 성리학적 개혁군주를 자임하며 자신의 자칭 왕도정치 이념과 체계를 태극과 리일분수 등의 성리학적 이론 체계 위에서 설명하였지만, 사실 그가 보는 인간과 사회의 질서는 보편본성이 모든 개별자에게 본유되어 있는 체용론적 구조가 아니었다. 그는 대일통(大一統)의 본말론적 수직 체계에서 자신의 국가와 구성원들을 파악했고, 이것은 한대 우주관에 기반해서 군주를 정점으로 하는 계층적 통치사상인 황로학이나 한대 경학과 가까운 것이다. 정조는 국가 전체의 이념과 질서를 왕인 자신의 의지에 복속시키고자 했고, 신민들에게 도덕적 주체성을 허용하지 않았고 정치의 공동주체로 인정하지 않았다. 정조의 성리학적 군사의 천명과 성리학 부양의 이면에는 한대 정치의 존군비신(尊君卑臣)과 국신동일론(國身同一論)에 대한 지향이 있었던 것이다. This paper examines the eclectic tendencies of Han Sung that are accepted in the political thoughts of Jeongjo. In addition, this paper attempts to infer that the monarchy of King Jeongjo is similar to the one-government philosophy that promoted king-centered national unity. Although Jeongjo was still regarded as an unifying ideology for the reconstruction of the state order, it was critical of the philosophy and rigidity of it. And he expressed the position of Hansong eclectic, considering that actual archaeology, that is, Hanhak, could complement this. In politics, he emphasized practical rule of law such as concentration of kingship, bureaucracy, and criminal justice system rather than constitutional royal politics.
Bibliography:Yul Gok Society
ISSN:1738-8236
2713-7236
DOI:10.35436/yulgok.2021.45..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