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일전쟁 시기 러시아의 대한반도 정책
1894년 초 조선에서 발생한 동학농민봉기를 계기로 청국과 일본 양국 군대가 파병하여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기가 고조되었다. 러시아는 청일전쟁의 발발 가능성이 감지되는 때부터 시종 사태의 진전과정을 주시하면서 자국의 국익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러시아는 청일 양국 군대 철병에 대한 청국의 중재 요청을 받고 청국과 일본 주재 자국 외교관을 통하여 활발하게 중재외교를 전개하였다. 러시아의 중재노력은 일본의 확고한 개전의지로 인하여 실패하였으나 청일 양국의 대치상태에서 전쟁발발을 40여일이나 지체시키는 데 영향을 미쳤다.청일전쟁 초기 일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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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ublished in | 중소연구 Vol. 30; no. 1; pp. 151 - 1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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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in Authors | , | 
| Format | Journal Article | 
| Language | Korean | 
| Published |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25.05.2006
     아태지역연구센터  | 
| Subjects | |
| Online Access | Get full text | 
| ISSN | 1012-3563 2508-5425  | 
Cover
| Summary: | 1894년 초 조선에서 발생한 동학농민봉기를 계기로 청국과 일본 양국 군대가 파병하여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기가 고조되었다. 러시아는 청일전쟁의 발발 가능성이 감지되는 때부터 시종 사태의 진전과정을 주시하면서 자국의 국익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러시아는 청일 양국 군대 철병에 대한 청국의 중재 요청을 받고 청국과 일본 주재 자국 외교관을 통하여 활발하게 중재외교를 전개하였다. 러시아의 중재노력은 일본의 확고한 개전의지로 인하여 실패하였으나 청일 양국의 대치상태에서 전쟁발발을 40여일이나 지체시키는 데 영향을 미쳤다.청일전쟁 초기 일본이 조선의 독립을 보장하고 자국의 이해를 침해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 러시아는 직접적 개입은 하지 않고 상황을 주시하는 소극정책이었다. 그러나 애초 청국의 승리를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일본이 승리하고 요동반도의 여순을 점령하자 러시아는 개입을 결정하고 적극정책으로 전환하였다. 러시아는 청일 양국의 강화회의 교섭내용을 주시하다가 마침내 삼국간섭을 주도하여 일본의 전쟁승리의 의미를 축소시켰다. 따라서 한반도 식민지화를 추진하고, 나아가 대륙진출을 의도하고 있는 일본과 러시아의 대립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KCI Citation Count: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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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bliography: | ASIA-PACIFIC RESEARCH CENTER HANYANG UNIVERSITY G704-000471.2006.30.1.004  | 
| ISSN: | 1012-3563 2508-5425  |